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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본한석봉천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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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샘 · 2021.12.13 · 조회 506

만력본한석봉천자문 사진 1
만력본(萬曆本) 석봉(石峯) 천자문(千字文) 표제 千字文 저자사항 周興嗣주흥사 著; 韓濩한호 書서 판사항 목활자본(木活字本) 발행사항 [刊寫地未詳]: [刊寫者未詳], 1800년경 형태사항 1책(冊), 42장(張)(84쪽); 24.7×32.2 cm, 楷書體임 주기사항 萬曆十一年 正月八日 副司果 臣 韓濩奉敎書(卷末) 분류기호 한국십진분류표(박봉석편) -> 3111 『천자문(千字文)』은 석봉 한호(石峰韓濩, 1543-1605)가 서사(書寫)한 필체(筆體)를 판하본(板下本)으로 하여 간행(刊行)한 목판본(木板本)으로 현전(現傳)하는 유일(唯一)의 초간본(初刊本)이라는 점에서 석봉서체(石峰書體)의 연구에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선조 16년(1583)에 처음 간행된 이래 왕실, 관아, 사찰, 개인에 의해 여러 차례 간행되면서 조선시대 천자문 판본 가운데 가장 널리 전파되어 초학자의 한자, 글씨 학습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 국어학, 서지학, 서예사 연구자료로서의 가치도 크다. 나아가 조선시대 중기 이후의 교육사(敎育史)와 국어사(國語史) 및 출판문화사(出版文化史)의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문을 처음 배우는 사람을 위하여 편찬한 교재. 한자학습서. 권말(卷末)에 만력(萬曆) 11년 정월(正月) 팔일(八日) 부사과(副司果) 신(臣) 한호(韓濩) 봉교서(奉敎書). 서기 1581년 1월 8일에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사과(副司果) 신하는 선조대왕(宣祖大王)의 가르침을 받아 명(命)을 받들어 한호(韓濩)는 쓰다. 목판본(木版本) 1책(冊). 구한말(舊韓末) 서기 1800년. 한국고미술협회 감정을 받아 진품(眞品)이 확인됨. 간간(間間)히 글씨가 흐려서 먹으로 더칠[加筆]을 한 것이 있음. 4언절구(사언(四言)絶句)의 한시(漢詩)이자 대표적인 한문 습자교본(習字敎本). 저자(著者)는 중국 남북조(南北朝)시대 양무제(梁武帝) 때의 학자인 '주흥사'(周興嗣, 470~521). 삼국시대 종요(鍾繇)가 이미 천자문을 지었다고 하나, 현재 알려진 것은 주흥사(周興嗣)의 《천자문(千字文)》이다. 당장 죽림칠현(竹林七賢)이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중국 양무제가 여러 임금[諸王]들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鍾繇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 중(中)에서 일천자(一千字)를 거듭되지 않도록 뽑아 주흥사(周興嗣)에게 명(命)하여 운(韻)을 달아가며 문장(文章)을 만들게 하니 주흥사는 하루에 끝내느라 머리털이 모두 희게 되었다. 그리하여 《백수문(白首文)》 또는 《백두문(白頭文)》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과 지금을 막론하고 아동(兒童)들의 한자(漢字) 교육(敎育)에 이 천자문(千字文)을 쓰고 있다. 주흥사가 양무제의 명을 받아 만들었다고 하는데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양무제가 그의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 무작위로 훼손된 고서(古書)를 하나 뽑아 이 책의 내용을 복원해보라고 했다는 설(說), 또 하나는 주흥사가 우연한 일로 양무제의 노여움을 사 주살(誅殺)당하게 됐는데, 이를 용서받는 조건으로 '하룻밤 안에 4자씩 250구절의 시를 짓되, 한 글자도 같은 글자를 쓰면 안 된다'고 조건을 달아 만들었다는 설(說)이다. 이 때문에 주흥사는 하룻밤 새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하여 훗날 사람들이 그를 더러 백두(白頭) 선생 혹은 백수(白首) 선생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이 때문에 천자문을 다른 말로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부른다. 몇몇 야사에서는 996자까지 만들고 마지막 4자에서 막혔는데 귀신이 나타나서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내라고 알려줘서 간신히 1,000자를 끝마쳤다고도 한다. 이 한시의 대단한 점은 '사언고시'(四言古詩) 250구(句)로 이루어졌으면서 글자가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옛부터 한문을 배우는 사람들의 입문서로 활용되었다. 장난으로야 "가마솥에 누룽지~" 하지만, 제대로 정독(精讀)하고 읽으면 내용도 참 운치(韻致)있다. 내용도 운치있고 글자가 겹치지 않기에 교육용으로 쓰이던 거지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겹치는 글자가 없는 1000자로 이루어져 있고 적어도 당대에는 상용자가 많아 한자 교재로서 애용되었다. 대대로 한국에서는 한자를 처음 배우는 입문자들, 특히 어린이들의 교재로 사랑받아왔다. 천(千) 년(年)도 한참 넘게 지난 지금도 한자 교재(敎材)하면 천자문을 떠올릴 정도인데 근대 이전 천자문의 대중성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한자 초심자가 꼭 배워야 할 필수요소로 대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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